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인천의 하천이야기④ - 청천천,계산천,한다리개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인천의 하천이야기④ - 청천천,계산천,한다리개
  • 사무국
  • 승인 2007.09.0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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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청천천, 그리고 계산천

청천천은 천마산과 중구봉 사이 효성동 ‘도둑굴’이라는 깊은 골짜기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흘러가는 개울이다. 아나지 고개 오른쪽을 끼고 원적산 암벽을 들이 받은 뒤 청천동(마제이) 앞 마장 뜰로 가로 질러 동류하다가 삼산동 벌판에서 원통천과 합류한다.

 이 냇물은 모래가 많이 쌓여 평지와 다름없고 항상 맑은 물이 흘러내려 이름을 ‘청천(淸川)’이라 지었다.


 1923년 설치된 부평수리조합은 물줄기를 개선하면서 부평관광호텔 쪽으로 물길을 곧게 뚫어 수리조합 서부 간선수로에 연결했다. 이후 1965년 쯤 새로 뚫린 청천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은 한국수출 4공단이, 남쪽은 대우자동차 공장이 들어섰다. 청천천은 모두 복개됐고, 그 위로 신작로가 나 있다.


 계산천은 계양산과 중구봉 사이 계산풀장 골짜기에서 원출해 계산동 중심가를 꿰뚫는다. 먼동재기슭을 스치고 고성산(古城山) 냇물을 받아 계산동 ‘살나리’(서부간선 다리 건너편 마을)로 흘러 직포인 한다리개로 합류한다.


 여름철 장마가 들면 계산천은 밀어닥치는 급류에 휘말려 삽시간에 범람했다. 큰 물에 휩쓸린 주춧돌 같은 큰 돌들이 마을을 덮치기 일쑤였고, 개울둑은 매년 터져 농경지가 물에 잠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산한 촌에 불과했던 계산동이 계산지구 도시 개발로 몰라보게 변했고, 계산천 생류지역도 모두 콘크리트로 덮어져 옛 모습을 찾아 볼 길이 없다.


2-2. 서울과 국도를 잇던 한다리개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과 부천시 오정구 대장동을 경계로, 굴포천 상류직포에 설치됐던 다리가 있다. 서울과 국도를 잇던 이 다리는 ‘크다’는 뜻을 갖고 있다. 또 이 다리의 이름을 따서 직포를 ‘한다리개’라고 도 했다.


 ‘부평읍지’에서 밝힌 한다기래는 ‘부평부 동쪽 10리 거리 직포에 가설된 돌다리로 홍여를 틀어 세 개의 수문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이 홍여는 앵 끝이 처지고 가운데는 무지개처럼 둥글고 높게 솟은 모양을 말했다. 한다리의 홍예문은 세 개의 홍예를 연결해 만들어 그 석축의 교묘한 공법은 대단한 자랑거리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 다리를 놓은 연유는 조선 말기 고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곡인 삼남지방의 대동미를 서울 용산의 경창으로 옮기는 해상수송 과정에서 반드시 지나가야만 하는 강화 손돌목의 피해를 막기 위한 방편이었다.


 서구 원창동 갯말 포리에서 한다리를 이용하면 해상을 거치지 않고 막바로 서울로 수송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한다리의 역할은 어느 다리 못지않게 중요했다. 때문에 다리를 놓을 때도 명성 높은 전국의 석공들을 불러 시공했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이 한다리는 일제 강점기 말 경인고속도로의 전신인 ‘군사도로’를 만들 때 직포의 배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철거됐다. 이 다리를 없앨 당시 난간에서 다리를 처음 가설할 때 쓰던 석공의 연장이 발견됐고 다리가 언제 헐리게 된다는 예언까지 적힌 글귀가 발견됐다고 전한다. 한다리는 다리를 놓은 지 60년 정도 유지되다가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대신 북쪽 10m지점에 ‘중앙교’라 이름 지어진 콘크리트 철구조로 세운 다리가 가설됐다. 현재 이 다리는 부천시 하수종말처리장 뒤편 쓸모없는 폐교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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