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하천이야기
인천의 하천이야기
  • 사무국
  • 승인 2008.04.30 13: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 -2. 옛말이 된 송도 ‘펄 꽃게’


예전 송도의 모시조개(가무락)와 꽃게는 유명세를 달리했다. 정월 보름 송도의 모시조개탕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헛 먹는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서울 사람들은 이날 일부러 송도를 찾곤 했다.

송도의 꽃게는 맛으로 이름을 한껏 떨쳤다. 송도갯벌에서 자란 꽃게가 이른바 ‘펄 꽃게’였던 것이다. 송도 ‘펄 꽃게’가 워낙 유명세를 타자 장사꾼들이 다른 곳에서 잡은 꽃게이다 펄을 발라 ‘송도 꽃게’라며 속여 팔 정도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옛날 얘기가 되고 말았다. 가무락과 펄 꽃게를 키웠던 송도의 갯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인천 남구 학익동 ~ 옥련동 ~ 동춘동을 잇는 해안도로가 놓여있는 그 자리는 1970년대 초 만해도 ‘조개의 황제’라고 불리는 ‘백합’ 껍질이 수북이 쌓여 있던 곳이다. 바닷물이 빠졌을 때 남구 용현동 토지금고 인근 낙섬(落鳥)에서 연수구 옥련동 아암도(兒岩鳥)까지 백합 껍질 위를 길 삼아 다닐 정도로 백합이 지천이었다. 송도 앞바다는 그야말로 ‘황금 갯벌’이었던 것이다.

그 후 30여 년 새 송도의 갯벌은 뭍으로 변했고, 대신 아파트와 공장들이 들어섰다. 송도 갯벌이 삶의 터전이었던 어촌계는 명맥만 유지할 뿐이다. 이것이 매립의 산물인 것이다.

송도 갯벌의 부침(浮沈)은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당시 송도갯벌은 남구 용현동 ~ 연수구 옥련동 ~ 청학동 ~ 동춘동 ~ 남동구 고잔동 ~ 논현동까지로 이어져 있었다.


남국 용현동 갯골은 동양제철화학 앞까지 들어서 있었고 송도 석산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찼다. 남구 학익동과 연수구 옥련동 사이에 작은 동네가 ‘조개골’로 불린 것도 이 때문이다. 바로 앞 갯벌에서 조개를 캐다 팔았기 때문이다.
지금 현대와 럭키 아파트 등이 들어 선 옥련동의 능허대는 밀물 때 섬이었다. 동춘동 앞 바다에서 연수동 롯데마트 인근까지도 갯골이 길게 나 있었다. 남동구 고잔동 앞 바다에서 선학동과 문학경기장 인근까지도 바닷물이 들고 나는 갯벌이었다.

라마다 송도호텔 앞에서 500m 가량 떨어진 동막에 꽃게탕 집들이 밀집한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송도 꽃게는 맛 좋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갯벌에 말뚝을 세운 뒤 그물을 쳐 놓으면 다닥다닥 꽃게가 붙을 정도로 황금 꽃게 어장이었다. 그 유명세로 인해 들어선 것이 동막의 꽃게탕 집들이다.
인천의 어촌계도 주요 갯골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연안(동구 만석동) ~ 송도(연수구 옥련동) ~ 척전(연수구 청학동) ~ 동막(연수구 동춘동) ~ 고잔(남동구 고잔동) ~ 소래(남동구 논현동) 등이 있었다.

이들 어촌계는 1957년 정부가 양식업 진흥을 계속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인천은 심한 조수 간만의 차로 생긴 갯벌이 드넓은데다 영양염류가 풍부한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 등의 물이 빠지는 길목이어서 조개류를 양식하기에는 탁월한 입지를 갖추고 있었다. 인천의 송도 갯벌은 양식업 투자의 핵심지역이었다.


지금의 송도 해안도로가 생긴 갯벌에 조개껍질이 쌓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어촌계는 백합과 바지락, 가무락 등 조개류 중심의 양식에 집중했다.
이에 따라 1961년 47만6천238kg이었던 양식 생산량은 이듬 해 106만1천697kg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계속된 양식업 진흥사업으로 1965년 양식 생산량은 472만7천73kg으로 급증했다.
1970년대 정부가 양식 사업을 국가장려사업으로 권장하면서 송도 등 연안 갯벌은 대규모 조개 양식장으로 변모했다.

1971년 백합 118㏊, 가무락 315㏊, 굴 10㏊이었던 양식장이 1979년에는 백합 374㏊, 가무락 438㏊, 굴 22㏊로 넓어졌다. 생산량도 712만9천408kg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1979년 송도 갯벌의 조개양식은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 인천항 관내 공유수면 종합매립 기본계획에 따라 건설부가 신규어자 개설을 막고 기존 어업권에 기간 연장허가를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5년 동양제철화학이 소다회 공장 착공과 동시에 지금의 해안도로에 제방을 쌓으면서 갯벌이었던 학익동과 옥련동 80만 평은 차츰 소다회 부산물인 폐석회로 메워졌 고, 그 터에 공장들이 들어섰다.

이와 함께 1981년과 1982년 인천위생공사(주)와 (주)한독이 옥련동 앞바다 7만5천 평과 40만7천여 평을 관광지와 위락시설 터로 매립했다.

한국화약은 1985년 화약 시험장과 야적장으로 고잔동 갯벌 11만 평, 한국토지공사는 남동공단 조성으로 논현동 갯골 85만 평을 메웠다.

1980년대 해안선과 맞닿은 갯벌 매립은 1990년대에는 바다 한 가운데로 옮겨졌다. 인천시는 1994년부터 동춘동 앞 바다 535만 평을 매립해 송도국제도시 조성에 나서기 시작했고, 한국가스공사와 LG칼텍스, 대림건설은 육지와 8km 떨어진 동춘동 앞 바다 한 가운데에 LNG인수기지를 세우느라 52만 평을 매립했다.

그러나 송도 갯벌의 육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송도국제도시 추가 조성으로 1천여만 평의 땅이 더 매립돼야 하고, 2006년 말 제방공사가 마무리되는 인천항 제3준설투기장으로 인해 70여만 평의 갯벌이 사라질 형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하천살리기추진단 - 
  • 인천광역시 연수구 갯벌로 12 1503호(미추홀타워)
  • 대표전화 : 010-3238-5490
  • 팩스 : 032-440-8686
  • Copyright © 2013 Icriver.or.kr.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